클레오파트라.

5월 28일 VIP 로 친구덕분에 보게된 간만의 뮤지컬.
클래오파트라 박란, 시저의 정찬우, 안토니우스 김승희, 옥타비아누스 최성원의 캐스팅

클래오파트라.
파스칼이 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었을꺼라고 이야기한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이집트의 여왕.

Synopsis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시저는 이집트로 입성하게 된다.
당시 이집트는 프톨레마이우스 14세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지만 실세를 누리며 섭정을 하던 사람은 포티누스였다.
그는 어린 프톨레마이오스의 누나인 클레오파트라를 견제하고 이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클래오파트라는 스스로 값비싼 카페트에 싸여 시저에게 선물로 보내지는 방법을 택하고, 시저는 그녀의 당당함과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사랑에 빠지게 된다.

클레오파트라는 시저의 지워능로 파라오 자리에 오르고, 시저와의 사이에서 낳은 이들을 로마의 지배자로 만들려는 야망을 품게된다.
로마 원로원은 시저와 클레오파트라에 불만을 갖게되고, 시저는 공화당의 음모로 암살당하게 되는데...

한편, 시저를 지원했던 안토니우스와 시저의 양자인 옥타비아누스는 필리피 전투에서 시저의 암살을 주동했던 브르투스가 이끄는 군대를 물리치고, 이후 안토니우스가 시저의 뒤를 이을 장군으로 부상하자 클레오파트라는 그와의 연합을 꿈꾼다.

로마의 제2차 삼두정치가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레피두스에 의해 시작된다. 하지만 필리피 전투 이후 로마 재정이 어려워져 안토니우스는 클래오파트라에게 원조를 구하러 이집트로 향하게 되고, 그는 그곳에서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옥타비아누스는 그의 누이 옥타비아와 안토니우스의 결혼을 강행하면서도 삼두정치를 강화하려고 하지만, 그 결혼도 야심에 찬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눈이 멀고 만 안토니우스를 막지 못한다.

이집트로 다시 돌아간 안토니우스는 모욕감과 배신감으로 가득 찬 클래오파트라를 달래기 위해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되고, 동시에 그녀와 그녀의 아들, 카이사리온을 시저의 아들이자 상속자로 공식적으로 선포함으로써 시저의 양자인 옥타비아누스를 자극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원로원을 설득하여 안토니우스와 클래오파트라와의 전쟁을 결정하게 되고, 이 전쟁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래오파트라의 연합군은 패한다. 이어 클레오파트라가 죽었다는 거짓전갈에 낙심한 안토니우스는 스스로 칼에 찔려 목숨을 끊고, 클래오파트라 역시 독사에 물려 자살하는 방법을 택하여 그녀의 권력을 향한 야심차고 화려한 인생을 마감한다.


시놉시스는 각색된 것으로 역사적인 다른 이야기들과 조금씩 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이 역사적인 스토리의 백미는.. 줄리어스 시저가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하면서 마치 아들과 같이 관용과 믿음을 베풀었던 사람의 배신을 탄식하는 극적인 순간에 허망한 눈빛과 같이 내뱉는 탄식과 같은 한마디라고 생각해왔다.

"브루투스, 너마저!"(Et tu, Brute!)

근데!! 이 뮤지컬에는 그게 없었다.
브루투스라는 배역자체가 없었고, 단지 옥타비아누스가 썩소와 함께 클래오파트라의 반대편에서 시저를 암살을 주동하는 입장에 있었다.

아..정말 그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시저가 암살당한후, 시저의 시신의 주변에서 흰옷을 입은 한무리의 사람들이 위대한 왕 시저의 죽음을 슬퍼하는 장면을 보며..
나를 지금까지 계속 울게 만들었던, 대통령의 서거가 오버랩되었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연아의 팬이신 레온옹께서 한국의 팬들에게 보낸 메일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Anthony says:
"The evil that men do lives after them;
The good is oft interred with their bones . . ."
True?
Who is better remembered today? Julius Caesar or his assassins Brutus and
Cassius?
And Caesar was accused of being too ambitious:
"When that the poor have cried, Caesar hath wept:
Ambition should be made of sterner stuff:"

 I am ignorant American with little understanding of Korea and Koreans. But
this is a human tragedy.

Korea is angry, confused but most of all Korea weeps, and I am sad.


안토니우스는 말했지.
"사람이 저지른 악행은 죽은 뒤에도 살아 남고, 선행은 흔히 뼈와 함께 묻혀 버리는 법입니다."

과연 그럴까?
오늘 누가 더 사람들에게 기억될까? 율리우스 카이사르일까 아니면 그의 암살자인 부르투스와 카시우스일까?

부르투스가 말한 카사르의 죄는 너무 야심이 크다는 것이었지.
하지만 안토니우스는 이렇게 말했어.

"가난한 자들이 울부짖으면 카이사르도 함께 울어 주었습니다. 야심이란 좀 더 모진 성격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나는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미국인일 뿐이야. 하지만 이건 한 사람에게 발생한 비극이야.
대한민국 국민들은 분노하고 혼란스럽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슬픔에 잠겨 있을거야. 나도 슬퍼.

                                                                           - 레온옹의 편지중에서...-


비록 뮤지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사. 지금까지도 믿었던 것에 대한 배신의 감탄사같이 쓰이는..
"브루투스, 너마저.." 라는 대사가 나올수 조차도 없이 브루투스 배역 자체가 사라지고, 작은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카리스마보다는 부드러운 옆집언니 같았으며, 객관적이고 바람둥이며 관조자적인 해설자 역활을 노렸던 제우스신은 한잔 걸치신 주책맞은 아저씨로, 관능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아우라를 풍기며 클레오파트라의 후광으로 비춰줘야 할 뱀은 과도한 다리찢기에 의해 오히려 코믹했을지언정..
 
대통령의 국장기간에 위대한 왕 쥴리우스 시저의 암살이라는 뮤지컬을 하나 본듯하여...
속으로 잠시나마.. 철철 흘러넘치던 눈물을 삼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로마의 공화정은 마치 지금 우리의 국회와 같지 않은가...


아래는...레온옹이 보내었던 메일에서 일부분 나온.. 시저의 충신 안토니우스의 독백이다.

Friends, Romans, Countrymen, lend me your ears;
친구여, 로마인이여, 동포여, 내 말을 들어주시오.
I come to bury Caesar, not to praise him.
난 시저를 묻으려 왔지, 그를 찬양하기 위해 온 게 아닙니다.


The evil that men do lives after them;
사람이 저지른 악행은 죽은 뒤에도 살아 남고,
The good is oft interred with their bones.
선행은 흔히 뼈와 함께 묻혀 버리는 법입니다.
So let it be with Caesar. The noble Brutus
시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결하신 브루터스는
Hath told you Caesar was ambitious.
여러분에게 시저가 야심가였다고 말했습니다.

 

If it were so, it was a grievous fault,
그 말이 맞다면, 그것은 중대한 잘못입니다.
And grievously hath Caesar answer'd it.
그리고 가혹하게 시저는 그에 대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Here, under leave of Brutus and the rest
여기, 브루터스와 다른 분들의 허락을 얻어---
(For Brutus is an honourable men;
브루터스는 존경할 만한 분이시고
So are they all, all honourable men).
다른 분들도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니까요---
Come I to speak in Caesar's funeral.
나는 시저의 장례식에 추도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He was my friend, faithful and just to me.
시저는 나의 친구였고, 내게 진실하고 공정했습니다


But Brutus says he was ambitious,
그러나 브루터스는 시저를 야심가였다고 하는군요.
And Brutus is an honourable men.
브루터스는 존경할 만한 분입니다.
He hath brought many captives home to Rome,
시저는 많은 포로를 로마로 데려왔고,
Whose ransoms did the general coffers fill.
그들의 보석금으로 국고를 채웠습니다.
Did this in Caesar seem ambitious?
시저의 이 점도 야심으로 보입니까?
When that the poor have cried, Caesar hath wept;
가난한 사람들이 울부짖으면 그도 함께 울었습니다.
Ambition should be made of sterner stuff.
야심은 그보다 모진 성격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Yet Brutus says he was ambitious;
그런데도 브루터스는 시저가 야심가였다고 합니다.

 

And Brutus is an honourable men
브루터스는 존경할 만한 분입니다.
You all did see that on the Lupercal
여러분은 루퍼캘 축제 때 보았을 것입니다.
I thrice presented him a kingly crown,
내가 세 번 시저에게 왕관을 바치고
Which he did thrice refuse. Was this ambition?
그가 세 번 다 거절하는 걸. 이것이 야심이었습니까?
Yet Brutus says he was ambitious;
그런데도 브루터스는 그가 야심가였다고 합니다.
And Brutus is an honourable men.
물론 브루터스는 존경할 만한 분입니다.
I speak not to disprove what Brutus spoke.
나는 브루터스가 한 말을 반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But here I am st speak what I do know.
내가 아는 것을 말하고자 여기에 왔을 뿐입니다.
You all did love him once, not without cause.
한때 여러분은 모두 그를 사랑했습니다. 이유가 없지 않았겠지요.
What cause withholds you then to mourn for him?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여러분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지요?
O judgment, thou art fled to brutish beasts,
오, 판단력이여! 너는 잔인한 짐승(Brutus에 대한 비유단어 사용)에게 달아나고
And men have lost their reason! Bear with me.
사람들은 이성을 잃어버렸구나. 잠깐 견뎌주시오(용서하시오).
My heart is in the coffin there with Caesar,
내 마음은 지금 시저와 함께 저 관 속에 있습니다.
And I must pause till it come back to me.
그게 다시 내게 돌아올 때까지 이야기를 멈춰야겠군요.

                                - 안토니우스의 독백 중에서 -
 
권력자 브루투스의 앞에서 안토니우스가 브루투스를 자극하지 않으려 하며 울분을 삭이면서 절절이 이야기하는 독백은..마치
브루투스를 MB로 시저를 노전대통령으로 치환해서 읽어보면.. 마치 현재와 같지 않은가..
그것도 아주 예의바른..현재.

친구와 극장 '용'의 계단을 내려와.. 집으로 가는 중에... 용산 아이파크 사이로 피빛 달이 떠 있었다.


노대통령

분류없음 2009/05/26 13:59


Tippi

분류없음 2009/05/22 00:14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태어난 소녀 Tippi
부모님은 프랑스의 사진작가.



여왕의 교실..

QueenOfPT 2009/05/11 10:45

누군가 캡춰한 여왕의 교실...
왠지... 낯설지 않지 않은가..




2009년 월드에 대한 단상(斷想)

- 소니아 비앙케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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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LA의 월드 챔피언 경기가 끝나고 우리는 몇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월드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LA에 있지 못해 경기를 TV로만 보아야 했습니다.


물론, 경기를 TV로 보는 것과 실제 경기장에서 보는 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속도감,  공간을 활용하는 것, 그리고 안무의 일정 부분등은 작은 화면에선 볼 수 없죠.

그래도 몇몇 프로그램은 매우 뛰어났습니다 : 여자 싱글에서 김연아와

조애니 로셰트, 그리고 남자 싱글에서 패트릭 챈, 이반 라이사첵, 사무엘 컨테시

그리고 아이스댄싱에서 데이비스/화이트와 버츄/모와 등의 경기입니다.

 

신 채점 제도(IJS)는 많은 프로그램에서 감정 표현을 없애왔습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몇몇 예술적인 장면들을 보게 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패트릭챈과 김연아의 경기는 그야말로 경이적이었습니다.

 

연아는 그녀만의 특별한 수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우아했습니다.

나는 그녀가 음악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능력, 그녀의

모든 동작의 조화로움, 그리고 탁월한 안무에 감동받았습니다.

그녀의 쇼트프로그램(죽음의 무도)은 최고였으며 오랬동안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베스트 프로그램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 프로그램은 나를 울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몇년동안이나 그리워하던 

"예술적인 감동"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피겨역사에 토빌과 딘의 볼레로, 카타리나비트의 카르멘,

커트 브라우닝의 카사블랑카 그리고 야구딘의 윈터와 함께 기록될 것입니다. 

고마워요 연아양!


===== 후략 ======

 

혹시 아직 보시지 못한 분들은 위의 역사에 남는 프로그램들을 유튜브에서 보시고 오십시오.

김연아 선수는 이미 세계 피겨팬들의 뇌리에 그들중 한명으로 각인이 되었습니다!

 

 


 

<원문 및 Link>

 

A Few Thoughts on 2009 Worlds

- By Sonia Bianchett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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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ld Championships in Los Angeles are over and we can now draw some conclusions.

I was not in Los Angeles and therefore I could only watch the best two groups in each event on TV.

Of course, there is a great difference between seeing programs in the arena or on TV.

The speed, the use of the space and also part of the choreography are lost on a small screen. 

Still some programs  looked just outstanding to me: in Ladies, Yu Na Kim and Joannie Rochette; in Men,

Patrick Chan, Evan Lysacek and Samuel Contesti; and in ice dancing, Davis/White and Virtue/Moir.

 

Now that the IJS has stripped the emotion out of so many programs, it is a welcome sight to

see some artistry again. Both Patrick Chan and Yu Na Kim were just wonderful.  

Yu Na was in a class of her own. She is so natural and elegant. I was impressed by her ability in

expressing and interpreting the music, by the harmony of all her movements, by the excellent choreography.

Her short program was superb, one of the best programs I can remember in a long time.

It made me cry!  She made me feel  that "artistic emotion"

that I have been missing for many years.

This program will go down in skating history like the Bolero of Torvill and Dean, Katarina Witt's Carmen,

Kurt Browning’s Casablamca or Yagodin’s Winter. Thank you Yu Na! 

== 후략 ==

 

 

 

원문출처 http://www.iceskatingintnl.com/current/content/Sonia%202009%20Worlds.htm

펌출처 http://bbs.sports.media.daum.net/gaia/do/sports/bbs/group2/general/read?bbsId=F007&articleId=30717&pageIndex=11&searchKey=&searchValue=&sortKey=depth&searchName=




Helene Elliott
March 28, 2009

 

Kim Yu-Na knows figure skating history as well as she knows how to land crisp triple-triple jump combinations and bend her body into swift and supple spins, which is to say extraordinarily well.

The South Korean teenager, who performed a mesmerizing short program Friday to separate herself from the field at the world championships, is coached by Brian Orser, the Canadian entry in the "Battle of the Brians" that was played out at the 1988 Calgary Olympics. His nemesis was U.S. champion Brian Boitano, who won the gold medal on Canadian ice on the strength of a 5-4 judges' decision in the free skate.
Kim hadn't been born when Orser and Boitano traded world championships, but Orser has told her about the competitions he lost to Boitano and the ones he won and the thin margin that often made the difference.

He did it not out of egotism but to give her insight into the mental strength she will need as she tries to unseat reigning world champion Mao Asada of Japan, her most frequent and fervent rival.

"He was a very great skater many years ago. He really helps me to focus on my own programs," Kim said Friday.

"He really knows what I feel in the competitions because of Brian-Brian, and I'm doing that now. So I think he's a very good coach for me."

Orser laughed at her name for that long-ago rivalry and chuckled again when told she had praised his coaching skills.

"Oh, good," he said, smiling. "I still have a job."

He has done his job brilliantly so far, transforming a 15-year-old girl who never smiled when she came to Toronto to seek his help into a polished and poised young woman whose smile and smooth assurance shone through in every move in her "Danse Macabre" program.

More than helping her with jumps or spins, he has taught her not to fear competition. Being pushed can topple you or make you stronger, and Kim doesn't seem the toppling sort as long as Orser is there to guide her and make her feel calm in the most nerve-racking of situations.

"It's just because knowing what I know as far as being through it," he said. "Just how I went through it at that level and the Olympics and the rivalry and the job you need to do.

"When there's somebody else in the rink that knows what you feel, who you can actually go, 'OK, he knows what I feel,' I think it's comforting."

She could scarcely have been more at home than she was on Friday, traversing the ice at Staples Center with lithe and lovely spirals and deft spins. She did get a warning for taking off on the wrong edge for her triple flip, but she still got a positive grade of execution for that jump, part of the record 76.12 points she earned.

Joannie Rochette of Canada was the only skater who didn't get a single minus and she was a solid second with 67.90 points, sandwiched between Kim and a contrite Asada, who turned a planned triple lutz into a faulty double lutz and lost points there to finish with 66.06.

Rochette was strong and forceful but lacked the luminous quality Kim brought to the ice; Asada floated and flowed to "Clair de Lune" but lost to Kim by nearly a full point on the performance/execution segment of the program components and was beaten on every other segment too.

Orser, stationed at the sideboards, jumped every jump with her and swayed his arms in time with hers. His grades of execution might have been lower, but his emotions were no less heartfelt than hers.

"She was fierce and she was on the attack," he said. "The technical aspects of her program were sensational, but she skated with her heart and soul. I'm very proud of her."

As well he should be. She could crack the 200-point mark today, a level no woman has reached.

"It's important we don't get too hung up on being in the lead and the points," he said. "We have to go out and skate a solid long program.

"I want her to skate with the same spirit she did today."

As he spoke in a hallway not far from the ice, Boitano walked by. He's here coaching U.S. women's title holder Alissa Czisny, whose error-filled performance looked even worse compared with Kim's magic.

"She was great," Boitano said of Kim.

"Wasn't she good?" Orser said.

"Oh, my God," Boitano said, his enthusiasm genuine, able, now as then, to appreciate the merits of a wonderful rivalry that has reached its second generation.

helene.elliott@latimes.com

 

출처: http://www.latimes.com/sports/la-sp-elliott-skate28-2009mar28,0,7488419.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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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ip Hersh
March 28, 2009

She is considered the biggest star in South Korea, a young woman who sings surprisingly well and skates remarkably well.

"Of course, skating is harder," Kim Yu-Na said with a laugh.

It didn't appear that way Friday afternoon, when Kim's seemingly effortless brilliance in the World Championships short program left two of the greatest athletes in the sport's history awe-struck after their first in-person view of her.

"I'm completely impressed," said 1992 Olympic champion Kristi Yamaguchi. "Her whole package is captivating to watch. She definitely has a special quality."

"Her first jump, I said, 'Wow, she has the power of a man and the grace of a woman,' " said 1988 Olympic champion Brian Boitano.

Kim, 18, was superwoman as she scored a record 76.12 points -- nearly four more than the old mark, which she set a month ago. It gave her a commanding lead over Joannie Rochette of Canada (67.90) and reigning champion Mao Asada of Japan (66.06).

"It's kind of scary to have a cushion like that," said Kim's coach, two-time Olympic silver medalist Brian Orser of Canada.

It would have been less than half that big had Asada not turned a planned triple lutz into a double and then landed it badly.

"I didn't attack the lutz enough," Asada said. "That is disappointing."

The lutz has given her frequent problems, and she will shun it in Saturday's free skate. Asada plans instead to do two triple axels, a jump no other woman here will attempt.

Both U.S. skaters were, not surprisingly, an afterthought for the second straight year.

Rachael Flatt was seventh despite a personal best 59.30, while U.S. champion Alissa Czisny was 14th at 53.28 after falling on her second and third jumps, a triple flip and double axel. As expected, there is almost no chance they can get the finishes -- adding up to 13 or fewer -- to earn three places for the U.S. at the 2010 Olympics.

"Everyone has been reminding me of it [the three places] since nationals," Czisny said. "There is obviously a lot of pressure."

Kim is a Korean icon who gets to sing on national TV, has several six-figure endorsements and deals with constant media attention. Yet she skated with a carefree passion that perfectly matched the fiery mood of Saint-Saens' "Danse Macabre."

"Every element of my performance was great," Kim said, and few could dispute that. .

Kim's performance Friday was reminiscent of two years ago in Tokyo, when she made a dazzling senior world debut with a record score. Her stamina then was limited by back and hip injuries that curtailed her training, and Kim slipped to third after the free skate.

The same injury also affected Kim's skating at the end of last season, when she won a second world bronze.

The only tiny flaw Friday was an edge issue on the flip jump that opened her triple-triple combination, which drew a warning notation. Kim was the only skater to average 8.0 or more on any of the five component scores -- and she did it on four.

"This was one of those moments in skating that people will always remember," Orser said.

It led Orser to do a triple jump -- OK, three little hops in a row -- as he stood at the boards.

"I can't help myself," he said.

No wonder. Kim made everyone who saw her want to jump for joy.

phersh@tribune.com

 

출처:  http://www.latimes.com/sports/la-sp-skate-worlds28-2009mar28,0,5168190.story

Helene Elliott

 

March 29, 2009

Every female figure skater in the United States who has Olympic aspirations and did not see Kim Yu-Na win the world championship Saturday night at Staples Center should be required to watch Kim's "Sheherazade" routine before taking to the ice again.

Not simply to remind them they are incredibly far from matching what the 18-year-old South Korean achieved and that they're unlikely to win a medal next February at the Vancouver Olympics.
That's undeniably true, though, after Rachael Flatt's earnest fifth-place finish and U.S. champion Alissa Czisny's 11th-place showing -- three places higher than she stood after her overscored short program.

No, every American woman and every American skater can learn something from Kim's seamless meshing of difficult jumps and intricate spins in a program that boosted her overall total to a record 207.71 points, the first woman to surpass 200 since this scoring system was adopted for the 2005 World Championships.

They should especially note the unruffled calm she displayed in recovering from a sloppy double salchow and finishing her program with supreme confidence.

They should study the way she expressed so much with her arms and carriage and face, creating a mood that entranced a nearly packed house.

The woman who never smiled on the ice until she left her home in 2006 to train in Toronto with Brian Orser couldn't stop grinning Saturday.

"I want to become a remembered skater," Kim said.

No one who saw her routine Saturday will forget it.

The mistake on the salchow, which was supposed to be a triple and was landed badly, was minor and forgettable.

What will linger is the sound of the crowd becoming hushed as she took off for her first element, a triple flip-triple toe loop combination jump, and its collective "oooh" of awe and delight as her blade crunched safely on the ice twice.

"I was very well prepared," Kim said. "While practicing, I have been confident and thought I was going to do well."

Not even she imagined she'd do this well. And consider this: She set that record even though she got no points for her final spin, which was declared invalid because it was not one of the required variations.

As she stood at center ice Saturday night she looked so small to be the object of so much affection, to have inspired a standing ovation, a flurry of flag waving and a torrent of stuffed animals thrown onto the ice in her honor.

But she earned every one of those tributes.

Kim finished more than 16 points ahead of the worthy runner-up, Joannie Rochette of Canada, and more than 17 ahead of 2007 world champ Miki Ando of Japan, who edged teammate Mao Asada for the bronze medal even though Asada landed a rare triple axel as part of her first combination jump.

"For tonight, of course, she skated so good there was no doubt," Rochette said. "And of course, she's a tough competitor."

Flatt left her first senior-level world championships with 172.41 points, or 35.30 behind Kim.

"This experience was irreplaceable," said Flatt, who grew up in Del Mar and trains in Colorado Springs, Colo. "I couldn't ask for anything more."

Czisny, penalized on three jumps but able to pull off her usual lovely spins and spirals, was 47.93 points behind Kim. The difference, truly, was even greater than that.

After a weak short program Friday she salvaged some pride Saturday with a better long program to "Dr. Zhivago." But her jumping skills and consistency are nowhere near good enough to think she could challenge for an Olympic medal.

For Czisny, who has long struggled with her nerves and since January carried the added burden of being the U.S. title holder -- and at a world championships in her home country -- the competition couldn't end soon enough.

"I'm a little bit relieved the season is over," she said. "It's been a long season for me."

The problem is that there is such a short time between now and the Olympics for U.S. women to move closer to that top tier.

Czisny, 21, won't get there without a miraculous cure for her jitters, which now define her. Flatt, 16, has potential but lacks speed and artistry.

Their combined placement here meant the U.S. can send only two women to the Winter Games, and neither Czisny nor Flatt might be the ones making the trip.

Caroline Zhang of Brea, third at the U.S. championships this year, and Mirai Nagasu of Arcadia, who won the U.S. title last year but struggled while competing on an injured foot this season, may be the best hopes for closing a gap that on Saturday appeared unbridgeable.

helene.elliott@latimes.com

 

출처: http://www.latimes.com/sports/la-sp-elliott-skate29-2009mar29,0,274860.column




Now a coach, Brian Orser still chases Olympic
figure skating gold
Updated 3/26/2009 12:17 PM |   
Olympic gold for Kim Yu-Na would help Brian Orser make up for his near miss in 1988.
Olympic gold for Kim Yu-Na would help Brian Orser make up for his near miss in 1988.
LOS ANGELES — What if an athlete who endured the most crushing disappointment on the grandest stage in his sport got a chance to try again two decades later, not exactly
the same way, but close?


In 1988, Canadian Brian Orser was one of the finest figure skaters of his generation, the Olympic silver medalist four years earlier, the world champion the year before. He came
into the Winter Olympics in his home country, in Calgary, facing almost unbearable pressure. Surrounded by an entourage to help him keep it together, Orser performed admirably. He didn't fall. He thought he skated well enough to win.


But he didn't win. By one-tenth of one point on one judge's scorecard, he came in secon
d that night to American Brian Boitano, who skated superbly to win the so-called "Battle of the
 Brians."


A few minutes after the competition, the two men passed each other in the dressing room, and
 Boitano will never forget what he saw: Orser trudging slowly, still in his skates, his mouth
open, his eyes glazed, flowers hanging limply in his arms. Orser walked into the
bathroom and lay down on the floor by the showers.


Boitano followed to see if he was all right.

"What can I say?" Boitano asked.

"Nothing," Orser replied.


It took Orser 10 years before he could watch a tape of his performance that night. Ten years, he said, before he got over it. After
touring in skating shows for many years, he decided three years ago to get into coaching in Toronto.


As it happened, a brilliant young South Korean skater who was already training at the Toronto rink asked Orser, now 47, to be
 her coach. Orser said yes, and in 2007 took her to her first world championships, where she finished third.


Kim Yu-Na finished third again at last year's world championships — and has placed first, first and second at the last three Grand
Prix finals. She could win her first world championship in women's figure skating here this week, 11 months before the 2010
Olympic Games, with Orser, of course, by her side.


They are working toward an Olympics that will be held in Canada for the first time since 1988, this time in Vancouver. So, 420 miles
and 22 years from Calgary, Orser will get another chance, this time through his student, to win an Olympic gold medal on Canadian
 ice.


"Poetic justice, eh?" Orser said Tuesday with a smile. "It's true. I have thought about it, and it's a perfect platform for her, having the
 Olympics in Canada, her second home."


And for him? "I've had a lot of time to reflect back on that night," he said, "and it was a great night of skating. Brian and I delivered,
and I hope that these skaters do the same thing next year. It was as if there was a script written for the week for Brian and me, and
 we really followed the script. It could have gone either way. It doesn't get much better than that."


For 18-year-old Kim — her country's first top female skater and a "mega-superstar" back home, Orser said — the next 11 months
won't be easy. Even last autumn, in the weeks before the 2008-09 season, Orser could tell Kim was close to a meltdown. "There's
nobody else in this rink who knows what you're feeling other than me," he told her. "The last thing you want to hear from anybody is
 that everything is going to be OK. You don't want to hear that. We don't know if everything's going to be OK. But what we do know is
 that we have control of the situation, so let's just take it one step at a time."

Orser said Kim heaved a huge sigh of relief. "We have our little chitchats," he says. "All of this is geared towards the Olympics."


One might think Orser would not dare to dream about winning the gold medal with Kim, but that's not the case. "It would be incredible," he says. "I feel very
 confident I can actually produce an Olympic champion. I can go into the season with confidence to follow the steps that I believe will
 make her Olympic champion. But that will be her moment."


Hers, yes, but also his? "Trust me, backstage, there will be a huge tear."


And would it make up at all for …

"Yes, it would," he interrupts. "Make up for Calgary? Yes, it would. Sure. I'd be lying if I said it wouldn't."

Hers. And his.




http://www.usatoday.com/sports/columnist/brennan/2009-03-25-orser-coach_N.htm

자신의 종목 가장 큰 무대에서 결정적인 실망을 참아야 했던 선수 한명이 20 여년 뒤 똑같은 방법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다시금 시도할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면 어떨까요 ?


1988년, 4년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자 1년전 월드챔피언 이었던 브라이언 오서는 그의 세대에서 가장 뛰어난 피겨스케이터중 한명이었습니다.


그의 고국내 캘거리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 그는 거의 견디기힘든 부담감과 맞선채 참가 했죠.

그를 돕기 위해 둘러싼 많은 이들과 함께, 오서는 훌륭히 공연을 했습니다.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충분이 우승할수 있는 스케이팅을 했다고 그는 생각했죠.


허나 그는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한 심판관의 채점표에 있던 1에서 1/10 이 모자른 점수차이로, 그날밤 최고의 스케이팅을 한 미국의 브라이언 보이타노가 소위 "Battle of the Brians" 에서 승리해 그는 2위가 되었습니다.


시합이 끝난 몇분후, 그 두 사람은 탈의실에서 서로를 지나쳤는데,  보이타노는 그가 본 , 아직 스케이트를 신은채, 입은 벌어져 있고, 눈은 흐릿하며, 힘없이 팔에 꽃다발을 들고 있던 오서를 결코 잊지 못할것입니다.


오서는 욕실로 걸어 들어가 샤워기 옆에 드러누웠습니다.


그가 괜찮은지 보려고 보이타노가 따라들어갔습니다.


" 내가 무슨말을 할수 있지 ? "


보이타노가 물었습니다.


" 없어 "


오서가 대답했죠.


오서가 그날밤 그의 공연 테이프를 볼수 있기까지 10년이 걸렸습니다.


이를 극복하는데 10년이 걸렸다고 그는 말하더군요

.

스케이트 공연을 하며 여행하느라 많은 해를 보낸후, 3년전에 토론토에서 코치직으로 들어서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침, 이제는 47살이 된 오서에게 이미 토론토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젊고 뛰어난 한국의 스케이터가 그녀의 코치가 되어달라며 물어왔습니다.

오서는 예스라고 말했고 2007년에 그녀가 3위를 차지한 세계선수권대회에 그녀와 동행했습니다.


김연아는 작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다시 3위를 했고 지난 3년간의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1위, 1위 그리고 2위를 차지했습니다.


2010 올림픽까지 11개월 앞서, 이번주에 이곳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대회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우승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녀옆의 오서와 함께 말이죠.


그들은 1988년 이래 처음으로 캐나다에서 열리는, 이번에는 뱅쿠버, 올림픽을 향해 함께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캘거리(올림픽)로 부터 420마일 그리고 22년 지난 후, 비록 이번에는 그의 제자를 통해서지만 캐나다의 얼음위에서 올림픽 금메달 우승을 위한 또다른 기회를 가지게 되는거죠.


" 시적인 공정함(Poetic justice) 이죠, 에 ?


화요일에 오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 사실입니다. 생각해 봤는데 그녀에게 제2의 고향인 캐나다가 올림픽을 개최함은 그녀에겐 완벽한 플렛폼 입니다. "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는 ?


" 그날밤을 회상할 시간이 나에게는 많았어요. "


" 브라이언과 내가 가져다준 스케이팅 최고의 밤이었죠.  그리고 이 스케이터들이 내년에도 같은 일을 하기 바랍니다. 브라이언과 나의 시간을 위해 대본이 쓰여졌던것 같았고, 우린 정말 그 대본을 따라갔어요. 둘중의 하나로 갔을 겁니다. 그 보다 더 나아지지는 않아요."


그녀의 나라에서는 첫 최고 여성 스케이터이자 고향에서는 '메가 수퍼스타'인 18살 김연아 에게 - 오서의 말로는 - 앞으로 11개월이 쉽지 않을 겁니다.


지난 가을, 2008-2009시즌 몇주전, 김연아가 붕괴 직전이었다고 오서는 말할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 네가 어떤 기분인지 나보다 더 잘알고 있는 사람은 링크위에 없다 "


" 어떤 사람으로 부터 네가 마지막으로 듣기 원하는 말은 '넌 괜찮을거야' 라는 말이지 "


" 그걸 듣기 원하면 안되. 모든게 괜찮을지 우린 몰라. 하지만 현상황을 우리가 조종하고 있다라는걸 알고 있으니까 하나씩 해 나아가자."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연아가 안도의 한숨을 쉬더라고 오서가 말해주더군요.


" 우린 잠시 대화를 나눴어요."


오서가 말합니다.


" 이 모든것은 올림픽을 향한 기어처럼 물려있죠 "


오서가 감히 김연아와 함께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위한 꿈을 꾸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건 아닙니다.


" 굉장할 겁니다."


오서가 말하더군요.


" 난 내가 올림픽 챔피언을 만들어 낼수 있을거라 아주 확신합니다. 난 그녀를 올림픽 챔피언으로 만들거라 믿는 계단을, 자신감을 가진채 따라가면서 시즌으로 돌입할겁니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순간이 될겁니다."


그렇죠, 그녀의(순간) 하지만 또한 그의 ?


" 날 믿어요, 스테이지 뒤에서, (난)많은 눈물을 흘릴겁니다 ."


그러면 그건 어떤 보상을 위한......


" 그래요 그건."


그가 말을 가로챘습니다.


" 캘거리에 대한 보상 ? 네 그렇습니다. 확실합니다. 아니라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죠."


그녀의.


그리고 그의.



Worlds: What we learned in L.A.

 

Wed Apr 01, 2009   

By Lee Ann Gschwind / Courtesy of NBC Olympics

 

The 2009 edition of the World Figure Skating Championships in Los Angeles included a belly flop, a hometown hero who thrilled the crowd and a teen star whose record-breaking performance set off celebrations in her homeland. Here’s a breakdown of the event, including a look at Olympic implications with the Vancouver Games less than a year away.

 

Most Clutch Performance
In January, Evan Lysacek finished just third at U.S. Nationals as the two-time defending champion. Leading up to the World Championships, which he missed last season due to injury, he battled a stress fracture in his foot that significantly limited his training. Skating in his adopted hometown of Los Angeles, Lysacek relied on experience and delivered exactly what he needed -- a clean, energetic eight-triple free skate -- to win his first world title. The 23-year-old didn’t transcend his ability – he has skated as well and even better -- but the circumstances brought magnitude to the moment. That Lysacek is capable of more, including a quad and a tougher triple Axel combination, is good news. His free skate in L.A. wasn’t quite the performance of a lifetime, but he may have set himself up for exactly that in Vancouver. The last American man to enter an Olympics as world champion was Scott Hamilton in 1984. He won gold.

 

Biggest Disappointment
Men: As the only contender with more big event experience than Lysacek, 2007 world champion Brian Joubert of France should have been a cool competitor. Despite mistakes in the short, he still led -- the title was his for the taking. But Joubert gave it away in the free skate. With several possible jumping plans, he chose poorly, leaving out a second quad in favor of his less secure triple Axel. A belly flop on a simple double Axel late in the program dropped Joubert to third, his lowest finish in four years.

Ladies: Italy’s Carolina Kostner, like Joubert a world silver medalist last season, plummeted to 12th with a disastrous free skate in which she failed to complete even one clean triple jump.

 

Most Dominant Performance
South Korea’s Kim Yu-Na was the most impressive skater in practices all week, landing gorgeous, flowing triple-triple combinations with ease. She wowed onlookers with her speed and dramatic interpretation. Those dress rehearsals carried over to competition, where Kim became the first woman to break the 200-point mark, easily winning her first world title by more than 16 points. The Toronto-based teenager is already a mega-star in her home country, which had never before produced a figure skating world champion. Expect her fame to go global as the Vancouver Olympics approach -- no skater will enter the Games a bigger gold medal favorite.

 

Most Surprising Result
Prior to Worlds, defending champion Mao Asada had never entered a major international event and failed to win a medal. She came to L.A. as the co-favorite, her head-to-head record against Kim even at three wins each. In third after the short, she boldly opened her free skate with a triple Axel-double toe, but fell on a second triple Axel attempt. That expensive error, plus the absence of a triple Lutz and her usual spark, cost Asada a medal. Still, she remains the skater most capable of challenging Kim for gold in Vancouver. And it’s worth remembering the circumstances under which Shizuka Arakawa triumphed in Torino: After taking the world title two years prior to the Games, she fizzled to ninth in 2005 before emerging to claim Olympic gold.

 

Best Comeback
Before there was Mao Asada, there was Miki Ando. The world junior champion in 2004, Ando was considered Japan’s top Olympic prospect. The press followed the teenage phenom relentlessly. But by 2006, Ando was struggling -- she finished a lackluster 15th in Torino. Ando recovered triumphantly, becoming world champion in 2007, only to be heartbroken again one year later, when she withdrew from Worlds with a leg injury. Ando rebounded once more in L.A., winning bronze. The 21-year-old boasts a tough technical arsenal and though she lacks the natural elegance of Kim and Asada, Ando has improved her audience connection considerably.

Honorable mention: Tomas Verner of the Czech Republic, who overcame a disastrous 15th-place showing last season to match his fourth-place finish from 2007.

 

American Expectations
Exceeded: Rachael Flatt finished fifth in her debut, looking faster and more polished than she did at Nationals, while U.S. dance champs Meryl Davis and Charlie White missed bronze by four hundredths of a point. Caydee Denney and Jeremy Barrett, who this time last year had yet to form their partnership, were unintimidated by inexperience and finished ninth.

Fell Short: Three of the four U.S. champions finished 11th, including Jeremy Abbott, who, despite winning the Grand Prix Final, managed only to match his result from 2008, when he was a last-minute injury replacement. Two-time U.S. pair champions Keauna McLaughlin and Rockne Brubaker never looked comfortable in their first Worlds and finished outside the top 10. U.S. ladies’ champ Alissa Czisny buried herself in 14th with a poor short program. An eighth-place free skate moved her up, but the Americans fell three placements shy of securing three Olympic spots.

 

Most Questionable Result
Entering Worlds, the talk was that an ice dance event had never been more wide open. But the pecking order was quickly re-established in L.A. Under the current scoring system, the top teams have nearly identical technical content: in the free dance, the top five differed by less than a point in total base value. That allows judges to place teams using GOE and program component marks. And they established obvious tiers: Russians Oksana Domnina and Maksim Shabalin and Americans Tanith Belbin and Ben Agosto occupied the top one, followed by Canadians Tessa Virtue and Scott Moir and Davis and White, and so on, with little regard for who performed better in each phase of the event. Belbin and Agosto’s podium return was welcome news, but doesn’t necessarily mean they’ll repeat as Olympic silver medalists. The Torino podium was identical to the 2005 world podium, but judges have been known to award skaters a world medal – particularly at home – only to deny them an Olympic one. Complicating the 2010 picture, last year’s champions, Isabelle Delobel and Olivier Schoenfelder of France, should be back from injury. It’s hard to imagine Virtue and Moir not winning a medal at home and it’s even harder to imagine an Olympic dance podium without a Russian representative. The Americans could be the odd couple out.

 

Most Dominant Performance (Team)
For the second straight Worlds, Canada won three medals – the most of any nation. Skating in the shadow of the Kim-Asada rivalry, Joannie Rochette defeated Asada for the third time this season and claimed silver, her first medal in seven appearances. The 23-year-old was largely ignored in press conferences overrun with Japanese and South Korean media, but that will almost certainly change as a home Olympics approaches. Pre-event favorite Patrick Chan improved on his ninth-place 2008 debut to win silver. The 18-year-old landed his troublesome triple Axels and – skating up to his pre-event trash talk – became the second straight quadless Canadian to defeat Joubert at Worlds. The downside for the Olympic hosts? Canada secured just two spots in each discipline.

 

출처: http://www.universalsports.com/ViewArticle.dbml?DB_OEM_ID=23000&ATCLID=370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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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경기후 이어진 NBC 연아인터뷰+스캇과 산드라의 찬사>

 

 

 

 

 

스캇왈, 프리에선 그냥 1분정도 쉬도 되겠대요 ㅋㅋㅋ

연아가 대체 못가진게 뭐냐고 그러고 ㅋㅋㅋ 완전 승냥이 되셨음 ㅋㅋㅋ

 

 

 

 

<프리 경기전&경기후 밥 코스타스, 미셸콴, 딕 버튼의 김연아 찬사>

 

 
 

 

 


 


 


 


 


 

 

 


 


 


 


 


 


 


 


 


 


 


 


 


 

 

 


 


 


 


 


 


 


 


 




 

 

 




 

 

아래글은...
어느 피겨팬이 쓰신 글입니다.
그분의 주관적인 느낌으로 서술하시기도 하셨지만, 제가 알고싶어했던 히스토리를 담백하게 써주셨군요.
읽다보면, 금메달에 대한 선수들의 인생의 무게감이..어떠한지..
개인적으로... nbc 딕버튼할배의 멘트처럼, 모든것이 순리대로,
오서의 8년 시간의 마침표를 연아가 찍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브라이언의 대결이라는 세기의 대결.
브라이언 보이타노 VS 브라이언 오서의 올림픽 경기에서 둘이 똑같은 점수로 경기를 마쳤고, 소수점 한자리의 점수에 의해
브라이언 보이타노가 금메달을 땁니다.

오서가 초점이 없는 흐릿한 눈으로..한손에 꽃다발을 들고 휘적휘적 걸어들어와 선수대기실로 들어가
벤치에 깊게 쓰러졌을때... 보이타노가 말을 건넵니다.

"내가 무슨말을 하여야 할까?"

오서가 대답합니다.
"nothing"

보이타노가 그때를 회상하며 한 인터뷰가 생각이 나는군요.
이제..그 nothing 이 everything 으로 바뀌길..바랍니다.

참 드라마틱한... 히스토리의 멋진..엔딩을 연아가 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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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글시작. 출처 연갤



1984년을 시작으로 한다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과거의 기록은 포함시키지 않는 이유는, 예전에는 선수간의 실력차이가 너무 커서, 타이틀을 오랫동안 독식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노르웨이 출신의 소냐 헤니라는 여자 스케이터는 1927~1936년에 걸친 10년동안 세계선수권을 10연속으로 우승했다. 이런 선수를 현대의 선수들과 비교하면 양쪽에 모두 불공평하다.)

 

 

 

1984. 사라예보. 남자, 스캇 해밀턴.                     여자, 카타리나 비트.

1988. 캘커리. 남자, 브라이언 보이타노.              여자, 카타리나 비트.

1992. 알베르빌. 남자, 빅토르 페트렌코.              여자, 크리스티 야마구치.

1994, 릴레함메르. 남자. 알렉세이 우르마노프.    여자, 옥사나 바이울.

1998, 나가노. 남자. 일리야 쿨릭.                       여자, 타라 리핀스키.

2002, 솔트레이크. 남자. 알렉세이 야구딘,          여자, 사라 휴즈.

2006, 토리노. 남자. 예브게니 플루셴코,              여자, 아라카와 시즈카.

 

 

 

월드는 너무 많아서 정리하기 힘들고, 그랑프리 파이널만 정리해 놓겠다.

 

 

1995 미셸 콴(미국)                   알렉세이 우르마노프(러시아)

1996 타라 리핀스키(미국)             엘비스 스토이코(캐나다)

1997 타라 리핀스키(미국)             일리야 쿨릭(러시아)

1998 타티아나 말리니나(우즈벡)       알렉세이 야구딘(러시아)

1999 이리나 슬루츠카야(러시아)       예브게니 플루셴코(러시아)

2000 이리나 슬루츠카야(러시아)       예브게니 플루셴코(러시아)

2001 이리나 슬루츠카야(러시아)       알렉세이 야구딘(러시아)

2002 샤샤 코헨(미국)                 예브게니 플루셴코(러시아)

2003 수구리 후미에(일본)             엠마뉴엘 산두(캐나다)

2004 이리나 슬루츠카야(러시아)       예브게니 플루셴코(러시아)

2005 아사다 마오(일본)               스테판 랑비엘(스위스)

2006 김연아(한국)                    브라이언 쥬베르(프랑스)

2007 김연아(한국)                    스테판 랑비엘(스위스)

2008 아사다 마오(일본)                      제레미 애봇(미국)

 

 

 

 

 

참...... 이름만 나열해도 정말 주옥같은 선수들이다.

 

먼저 남싱부터 가볍게 소개를 하자.

 

스캇 해밀턴은 뭐, nbc에서 승냥승냥거리며 해설하는 대머리 아저씨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김연아 선수한테 너무 호의적이라서 무슨 마음씨좋은 아저씨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원래 딕 버튼 못지않은 독기어린 혓바닥을 자랑하는 사람이다.

 

딕 버튼 할배가 잘하는 놈은 까고, 못하는 놈은 개무시하는 스타일이라면,

 

해밀턴은 까야 할 놈을 시원하게 밟아주는 스타일이다.

 

현역시절 커리어도 뻐렁치게 훌륭해서, 4년 연속으로 세계선수권을 석권했으며,

 

1984년에는 올림픽-월드를 동시에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오서는 해밀턴의 경력 후반기부터 함께 컴페티션계에 있었는데, 해밀턴의 포스가 너무 강해서 이 기간동안 월드챔피언에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해밀턴의 은퇴 이후, 드디어 오서의 시대가 오는 듯 했지만, 이후 브라이언 보이타노가 대를 이어 데뷔하며,

 

오서는 미국의 천재들에 밀려 월드 준우승만 4번, 우승은 고작 1번이라는 캐안습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1988년 금메달리스트 브라이언 보이타노는 오서와의 BOB로 잘 알려진 선수이다.

 

한쪽 손을 살짝 들어올리면서 뛰는 타노 럿츠는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명품연기이며,

 

매혹적인 외모 덕분에 팬들도 많았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완벽했다. 특히 스프레드 이글을 할 때는 남성이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유연성을 보여줬는데,

 

지금도 당시 영상을 보면 45도 정도 몸을 기울인 채로 물 흐르듯이 구사하는 스케이팅 스킬에 눈이 돌아갈 정도다.

 

은퇴 이후에는 카타리나 비트와 같은 단체에서 활발하게 아이스쇼 활동을 했는데, 워낙 왕자같고, 공주같았던 두 사람이라, 젊은 시절의 영상들을 보면 아름답기 그지없다.

 

물론 요즘은 좀 많이 쳐늙으셔서 예전의 광채어린 미모는 온데간데 없다. 보이타노, 커트 브라우닝, 스캇 해밀턴에 비하면 브라이언 오서는 진짜 잘 늙었다.

 

 

 

 

한편, 1992년 금메달리스트인 빅토르 페트렌코는 은반위의 아티스트라고 불렸으며,

 

80~90년대 은반을 지배한 선수였다. 커트 브라우닝이라는 또다른 전설에 밀려서 명성에 비해 월드와는 그닥 인연이 없었다.(우승 1회, 준우승 2회.)

 

1992년은 페트렌코 커리어의 정점이었으며, 이 해에 페트렌코는 월드와 올림픽을 동시석권하며, 커트 브라우닝을 두번 죽였다.

 

(커트 브라우닝은 컴페티션에 있던 5년동안 월드만 4번을 쓸었던 당대 최고의 선수였다. 그 기간동안 월드에서 브라우닝을 한번이라도 이긴 선수는 페트렌코가 유일하다. 참고로 커트 이 양반도 요새 CBC에서 승냥질하느라 정신이 없다.ㅋㅋ)

 

은퇴 이후에는 아이스쇼를 하며, 같은 나라 출신의 소녀 옥사나 바이울을 후원했던 훈훈한 미담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1994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알렉세이 우르마노프는 구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배출한 최초의 금메달리스트이다.

(페트렌코도 우크라이나 출신이라서 소련에 포함시킬 수도 있을 텐데, 왠지 모르게 계보에서 빠졌다.)

 

커트 브라우닝이 남싱계의 콴이라면, 우르마노프는 남싱계의 사라 휴즈라고 볼 수 있겠다.

 

뭐, 원래도 러시아 남싱 특유의 왕자같은 외모에, 월드에서 2~3위 정도 성적은 찍을 수 있는 뛰어난 실력까지 갖춘 선수였지만,

 

솔직히 멘탈적으로 불안정한 선수였기 때문에, 그가 올림픽 금메달을 딸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무난한 연기로 금메달 획득.

 

게다가 이듬해에는 그랑프리 파이널 1회대회 우승까지 차지하며 커리어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이후 '월드도 한번 석권해 보자' 라는 미련이 남았었는지 계속 컴페티션계에서 활동하지만, 포디움에도 오르지 못했다.

 

당대 최고의 포스를 발산하던 선수는 커트 브라우닝의 뒤를 이어 데뷔한 팀 캐나다의 대표주자이자, 가공할 의상센스로 유명했던 엘비스 스토이코였지만,

 

(요즘도 웬만한 남싱은 꿈도 못 꾸는 4-3을 가볍게 뛰던 선수였다. 월드 3회, 그랑프리 파이널 1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김연아 선수도 이 선수의 동영상을 보며 오서 밑에서 수련을 했다.)

 

'팀 캐나다'의 비극적인 숙명 탓인지, 스토이코 또한 선배인 브라이언 오서와 커트 브라우닝처럼 올림픽 금메달의 한을 풀지 못하고 만다.

 

 

 

1998년 금메달은 타라소바 사단의 일리야 쿨릭에게 돌아갔다.

 

은반위의 시인이라 불리던 쿨릭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닮은 미소년틱한 외모와,

 

서정적인 스케이팅으로 큰 인기를 모았으며, 팀 러시아의 대표주자로 각광받았다.

 

원래는 엘비스 스토이코나 토드 엘드리지보다 한끗발 떨어지는 선수로 낙인찍혀 있었지만,

 

올림픽 직전에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당당하게 우승하고, 그 여세를 몰아 올림픽까지 석권한 뒤,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기도 전에 전격 은퇴를 선언해 팬들을 충격에 빠트린다.

 

딱히 부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경쟁을 중요시하는 컴페티션계의 풍토가 싫었기 때문이라 한다.

 

물론 이후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한 야구딘과 플루셴코의 경력을 생각해 보면,

 

박수칠 때 떠났던 당시의 선택이 본인으로서는 더 나은 선택이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후 페어계의 전설이었던 GG의 카티야와 결혼해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2002년의 금메달은 알렉세이 야구딘에게 돌아갔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을 할 수 있을까. 그는 구채점제의 모든 것을 보여준 완성형 스케이터였다.

 

야구딘은 90년대 중반에 데뷔한 선수다. 그랑프리 시리즈에서도 2회대회인 96년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플루셴코는 3회부터 출전)

 

알렉세이 미쉰에게 기본기를 닦은 후, 플루셴코를 편애하는 미쉰에게 분노하여, '하늘아래 두 천재는 없다'며 타라소바에게로 가버린다.

 

이후, 러시아 연맹의 고위직에 있던 미쉰의 미움을 받아 내셔널에서는 한번도 우승하지 못하지만,

 

월드우승 4회, 그랑프리 파이널 2회 우승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남겼으며,

 

혁명 에튀드, 글라디에이터, 윈터, 철가면, 레이싱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명작들을 남겼다.

 

2002년 SP와 LP는 올림픽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로 손꼽히고 있으며,

 

캐나다에서 거행한 은퇴식에서 마지막에 남긴 연설은 팬들에게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선사했다.

 

 

 

 

2006년 금메달리스트인 플루셴코는 또 어떤가.

 

야구딘이 엄청난 높이와 비거리를 자랑하는 황제다운 점프를 했다면,

 

플루셴코는 빠른 회전속도를 이용한 밀도있는 점프를 구사했다.

 

역사상 최초로 쿼드 토-트리플 토-트리플 룹을 착빙했으며, 당대 남자 스케이터 중 유일하게 비엘만 스핀을 구사할 수 있었다.

 

동시대에 야구딘에 필적할 수 있었던 유일한 스케이터였다. 두 사람은 다른 스케이터와는 차원이 달라서, 다른 선수들이 기어다닐 때, 두 사람은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수준이었다.

 

2002년에 쇼트에서 박살이 나면서 야구딘에게 금메달과 스포트라이트를 모두 넘겨주었지만,

 

야구딘이 2003년 부상으로 은퇴한 뒤부터는 거의 혼자서 피겨판을 쓸고 다녔다. 그가 제대로 출전한 대회에서 그와 맞먹을 수 있었던 선수는 단 한명도 없었고,

 

10년 가까이 현역에 있으면서 월드 3회, 그랑프리 파이널 4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비슷한 기록을 쌓은 이리나 슬루츠카야와는 절친한 친구사이라고 한다. 웃긴 게, 야구딘과 플루셴코는 사이가 별로 안 좋고, 슬루츠카야와 부트르스카야도 사이가 엄청나게 나쁜데, 야구딘과 부트르스카야가 친하고, 플루셴코와 이리나가 친하다는 것이다. 아...... 인간이란 알 수 없는 동물.)

 

2006년 올림픽에서는 스테판 랑비엘이라는 강력한 도전자를 맞아, 부상으로 골골대면서도 쇼트에서 신채점제 최고점수를 세우며,(이후 다카하시 다이스케에 의해 깨짐)

 

압도적으로 우승한다. 이후 플루셴코의 은퇴와 함께, 쿨릭 이래 10년간 이어졌던 러시아의 천하는 끝이 났고,

 

차기 금메달리스트로 주목받던 제프리 버틀과 스테판 랑비엘이 동시은퇴하면서,

 

북미-아시아-유럽이 박터지게 싸우는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그렇다면 여싱은 어떨까?

 

물론 시작은  카타리나 비트다.

 

1984년 압도적인 기량으로 월드와 올림픽을 석권한 뒤,

 

계속 컴페티션계에 남아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미국의 데비 토마스와 라이벌이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카타리나 비트가 토마스를 포디움에서든, 은반에서든 압도했다.

 

비트는 1984년 이후 열린 4번의 월드에서 무려 금메달 3개를 더 쓸어담으며, 월드 4회 우승,

 

그리고 여세를 몰아 출전한 1988년 캘거리 올림픽에서는 트리플 악셀을 앞세운 이토 미도리를 카르멘 한방으로 잠재우며, 올림픽 2연패라는 전설적인 성적을 낸다.

 

이후에도 컴페티션계를 떠나지 않고, 유럽선수권 9연패라는 또다른 불멸의 기록을 세운 뒤,

 

잠시 은퇴했다가 1994년에 로빈훗을 들고 또다시 올림픽에 출전해 피겨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대가의 자세가 무엇인지 후배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동구권이 배출한 최고의 미녀로 손꼽히고 있으며, 2007년에 아이스쇼에서 은퇴하여 완전히 은반을 떠났다.

 

올림픽 금메달과 월드타이틀을 모두 획득한 뒤에도 아마추어계를 떠나지 않고 다음 올림픽까지 출전한 선수는 근 30년간 카타리나 비트가 유일하다.

 

 

 

1992년 알베르빌에서는 일본계  미국인 크리스티 야마구치가 금메달을 수상했다.

 

야마구치는 당시 비슷한 연배였던 낸시 캐리건, 토냐 하딩에 반발짝 앞서는 행보로, 월드를 2연패했으며,

 

같은 해에 열린 올림픽에서도 여유롭게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올림픽 금메달 획득 이후에는 다소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인 예전의 챔피언들과는 달리,

 

전성기의 몸매와 실력을 그대로 유지하며 활발한 아이스쇼 및 사회자선활동에 참가하며,

 

'가장 금메달리스트 다운 금메달리스트'라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은 야마구치가 일본계라는 것을 알고 대대적인 언론플레이를 시작하려 했지만

 

야마구치가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라고 딱잘라 말하는 바람에 몹시 뻘쭘해지고 말았다.

 

 

 

 

1994년 올림픽에서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고아소녀 옥사나 바이울이 '백조'를 들고 나와 금메달을 획득했다.

 

바이울 스핀이라고도 불리는 도넛스핀을 앞세워 대단한 예술성을 과시했으며,

 

단 4개의 아마추어대회에 출전해 그 중 가장 큰 대회인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서 우승하고 명예롭게 은퇴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사실 1994년 대회에서 옥사나 바이울은 기술적인 면에서 낸시 캐리건에게 뒤졌지만,

 

'백조'라는 프로그램의 뛰어난 예술성과, 고아라는 불우한 처지를 딛고 일어선 인간승리에 대한 연민과 감동이 심판들의 마음을 움직여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돈을 벌기 위해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다가, 또다시 오뚝이처럼 역경을 극복하고, 최근에는 아이스쇼 활동 및 피겨의상 제작에 힘쓰고 있다.

 

 

 

1998년 우승자는 타라 리핀스키였다.

 

사실 리핀스키는 떡잎부터 남다른 선수였는데, 내셔널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회에서 또다른 '앙팡 테러블'이었던 미셸 콴을 커리어 내내 앞섰다.

 

콴의 커리어 후반기에 박터지게 경쟁을 벌이는 이리나 슬루츠카야가 선배였던 마리아 부트르스카야에게 가려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하던 시절에,

 

리핀스키와 콴은 세계선수권에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그리고 올림픽에서 끊임없이 경쟁을 벌였다.

 

그리고 리핀스키는 미셸 콴이라는 걸출한 라이벌을 앞에 두고도, 3년 남짓한 짧은 현역생활 동안 월드 1회, 그랑프리 파이널 2회,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남겼다.

 

(그래서 콴은 자신의 앞길을 사사건건 가로막은 리핀스키와 사이가 안 좋다고 한다. 같은 이유로 사샤  코헨도 미셸 콴을 별로 안좋아한다.)

 

그녀의 발랄한 스케이팅은 팬들에게 인기도 좋았고, 특히 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의 성공률은 대단히 뛰어났다.(요즘 기준으로는 회전수 부족이다.)

 

 백인이었고, 금전지원이 빵빵한 미국 출신이었던지라,

 

카타리나 비트 못지않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몸을 혹사한 나머지, 야구딘처럼 고관절이 작살나는 비운을 겪고, 아이스쇼조차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이후 배우로 전향했지만, 원래 얼굴이 그렇게 예쁜 선수는 아니었던지라, 활동은 영 지지부진하다.

 

 

 

 

2002년 우승자는 사라 휴즈였다.

 

올림픽을 제외하면 별다른 대표작 하나 남기지 못했고, 미국 내에서의 입지도 영 시원치 않았던 그녀는

 

쇼트를 4위로 마친 뒤, 프리에서 평생 딱 한번 보여줄까말까한 클린 경기를 선보이며 엄청난 점수를 퍼받는다.(요즘 기준으로는 폭풍 다운그레이드. 하지만 구채점제니까 상관없음.)

 

당시 '링크에 돌을 던지지 않는 한 우승은 확정이다'는 평가를 들었던 미셸 콴은 예상치 못한 경쟁자의 등장에 급격히 무너지며 프리를 말아먹었고,

 

또다른 경쟁자였던 슬루츠카야는 사라 휴즈와 같은 점수로 경기를 마쳤지만,

 

'프리스케이팅 점수에 가산점을 준다'는 석연찮은 규정으로 인해 금메달을 휴즈에게 내주어야만 했다.

 

휴즈는 이후 아마추어에서 계속 활동을 한다고 공언했지만, 곧 자신이 별다른 성적을 낼 수 없음을 깨닫고, 프로로 전향한다.

 

(올림픽 프리스케이팅이 끝난 다음날, 슬루츠카야는 너무 울어서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갈라쇼를 했다. 이후 2년간, 슬루츠카야는 부상과 어머니의 병간호로 시련의 나날을 보내며, 매일매일을 눈물로 보내며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자국에서조차 한물 갔다는 평가를 받던 2004~2005년에 그랑프리 파이널과 월드를 모두 석권하며 화려하게 부활한다. 하지만 아사다 마오가 데뷔와 동시에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자신을 2위로 밀어내자, 세월의 무게를 깨닫고, 올림픽을 끝으로 조용히 은퇴한다. 이것으로 남싱에 비해 보잘것없었던 러시아 여싱의 마지막 여왕이었던 슬루츠카야는 그 화려한 커리어의 막을 내린다.)

 

 

 

 

 

최악이었던 2002년의 시련을 딛고, 2006년에는 또다른 인간승리의 대명사인 아라카와 시즈카가,

 

당시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하나도 못 따고 있던 일본에 극적인 금메달을 안겨준다.

 

2004년 월드에서 사샤 코헨과 미셸 콴을 밀어내며 최고의 퍼포먼스로 우승했던 시즈카는,

 

이후 신예들의 등장과 급격한 노쇠화라는 이중고 속에서 고생하다가,

 

약점이었던 유연성과 표현력을 대폭 강화해서 부활을 시도한다.

 

나이제한에 걸린 아사다 마오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땜빵으로 출전한 시즈카는,

 

쇼트에서 'Dark Eyes'로 역사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인 사샤 코헨,

 

그리고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이리나 슬루츠카야를 모두 밀어내며 2004년 월드 때와 같은 프로그램인 '투란도트'로 감동의 우승을 한다.

 

 

 

 

 

 

금메달은 실로 하늘이 내리는 것이다.

 

둘이 합쳐서 월드 7회, 그랑프리 파이널 5회를 쓸어가며 여자 싱글을 양분했던 이리나 슬루츠카야와 미셸 콴.

 

둘은 끝내 올림픽 우승의 숙원을 풀지 못했다.

 

늘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했던 캐나다 스케이터들도 항상 금메달 문턱에서 좌절해야 했다.

 

트리플 악셀을 동시대 남싱 중 가장 완벽하게 구사했던 브라이언 오서는 너무 막강했던 경쟁자들 때문에 2회 연속으로 금메달 코앞에서 좌절해야 했으며,

 

역사상 최초로 쿼드 점프를 착빙했던 '원조 토탈 패키지' 커트 브라우닝은 올림픽만 나가면 삽질을 하며, 2년 주기 올림픽이라는 절호의 기회조차 모두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또한 그들의 뒤를 이은 엘비스 스토이코 역시 러시아 남싱들의 전성기와 커리어가 겹쳐버리는 엄청난 불운 때문에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부상이 없을 경우 금메달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유리의 에이스' 다카하시 다이스케는 압도적인 실력에도 불구하고, 부상으로 인해 월드 우승조차 못하고 있다.

 

'쇼트의 여왕'이라 불렸던 사샤 코헨은 현역 시절에 신채점제와 관련된 신기록이란 신기록은 다 작성해 놓고도, 프리에서의 삽질로 월드 우승 한번을 못했다.

(코헨이 콴이나 슬루츠카야에 비해 한끗발 떨어지는 선수인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사라 휴즈보다는 훨씬 뛰어난 선수다.)

 

 

 

김연아 선수는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을까?

 

알렉세이 야구딘은 시니어 데뷔 이후 처음으로 출전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5위를 기록했다.

 

플루셴코 또한 시니어 데뷔 이후 첫 출전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5위를 기록했다.

(물론 당시 구채점제에서는 처음 출전한 선수한테 점수를 짜게 주는 풍토가 형성되어 있긴 했지만 말이다.)

 

한편, 김연아 선수는 데뷔하자마자 그랑프리 파이널을 우승했으며, 월드에서 3위를 기록했다.

 

김연아 선수는 미셸 콴보다는 야구딘과 플루셴코를 닮았다. 데뷔할 때나, 전성기 때나 약점이 뚜렷했던 콴에 비해,

 

야구딘, 플루셴코와 김연아는 단점으로 지적받는 부분이 있으면 차근차근 고쳐나간다.

 

그리고 이젠 그 발전이 쌓이고 쌓여, 편파판정조차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고 말았다.

 

데뷔 3년차. 김연아는 그 기간동안 월드 1회, 그랑프리 파이널 2회를 석권했다.

 

구채점제에 비해 점수가 더 구체적으로 들어나는 신채점제에서, 쇼트, 프리, 합계 모두 세계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경력을 쌓는 속도로 보면, 김연아 선수는 리핀스키나 크리스티 야마구치와 흡사한 속도를 보이고 있다.

 

이 기세라면 다음 시즌에는 야구딘 이래 최초로 그랑프리+월드+올림픽을 동시석권하는 기염을 토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김연아 선수의 우승이 장기적으로 피겨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그것은 야구딘과 옥사나 바이울의 사례에서 답을 찾아볼 수 있다.

 

크리스티 야마구치와 낸시 캐리건이 활동하던 당시 정점을 찍었던 미국 내의 피겨인기는 이후 점차적으로 하락했다.

 

야구딘과 옥사나 바이울은 국적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였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캐나다와 미국에서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야구딘은 캐나다에서 '양아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랑받았으며, 옥사나 바이울은 미국에서 거의 공주 취급을 받던 낸시 캐리건 못지않은 큰 인기를 구가했다.

 

물론 이 두 선수가 피겨인기의 하락세를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소한, 피겨에서 마음이 떠나있던 올드 팬들을 잠시 붙잡아두는 역할은 수행할 수 있었다.

 

김연아 선수 또한 마찬가지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아니, 범위를 캐나다에 한정한다면, 피겨 인기를 잠시동안이나마 다시 상승세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

 

코치가 브라이언 오서이기 때문이다.

 

오서는 '팀 캐나다'의 시작이었던 선수다.

 

그는 거의 10년 가까이 캐나다를 대표했으면서도, 늘 안타깝게 금메달을 놓쳤던 선수다.

 

브라이언 오서 이후, 팀 캐나다의 대표주자였던 커트 브라우닝과 엘비스 스토이코, 그리고 제프리 버틀은 모두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래서 캐나다 국민들은 물론이고, 미국 관계자들조차 오서에 대해서는 상당한 연민을 품고 있을 정도다.

 

이번 월드 해설에서도 미국 해설자가 '오서가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정말 모든 것이 순리대로 돌아가는 셈이지요. 저는 그를 응원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 월드 준우승만 4번을 하고, 올림픽에서 은메달만 2개를 땄던 비운의 스타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것이 김연아 선수의 뛰어난 퍼포먼스와 맞물려, 김연아 선수에 대한 응원과 사랑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은퇴할 것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금메달을 딴다면, 올림픽 직후 열리는 투린 세계선수권을 끝으로 은퇴할 것이다.

 

확실하지는 않다. 아마 그럴 것이라고 추측만 하는 거다.

 

물론 나도 김연아 선수가 2014년까지 더 현역에 있어줬으면 하지만,

 

앞에서도 썼듯이 지난 30년간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도 다음 올림픽까지 현역에 있었던 선수는 카타리나 비트 한명뿐이다.

 

나머지는 모조리 은퇴했다.

 

피겨 관계자들이 김연아 선수의 남은 활동기간을 5년으로 잡는다고 해서, 김연아 선수가 은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피겨 관계자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김연아 선수의 속마음은 김연아 선수 본인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보면, 은퇴할 가능성이 높다.

 

월드에서도 이미 우승했고,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우승했기 때문이다.

 

'계속 남아서 월드 5~6회, 그랑프리 파이널 5~6회 우승하고, 올림픽 2번 연속으로 우승해서 역사적인 선수로 남아라!'

 

이런 응원을 하는 사람들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이건 너무도 잔인한 요구다.

 

운동선수의 일상은 너무나도 지루하고 힘들다.

 

쇼트, 프리를 합쳐서 6분 남짓한 시간, 한 시즌에 월드, 그랑프리 시리즈, 사대륙까지 합쳐서 많아야 5번의 퍼포먼스. 도합 30분 남짓한 시간을 위해,

 

1년을 오롯이 훈련에 바쳐야 한다.

 

만약 김연아 선수가 2014년까지 현역으로 남는다면, 김연아 선수의 나이는 스물 넷이다.

 

여성으로서 가장 젊음을 만끽할 수 있는 나이인 20대 초반을 고된 훈련과 절제된 생활 속에서 보내야 한다.

 

글쎄, 나는 김연아 선수가 국위선양을 해주는 것도 좋고, 명작 프로그램들을 많이 남겨주는 것도 좋지만,

 

일단은 김연아 선수 본인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만약 계속 현역에 남아서 더 화려한 커리어를 남기고 싶다면, 그것도 좋다. 아니, 오히려 팬의 한 사람으로써 더 감사한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은퇴하더라도, 아쉬워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줄 것이다.

 

피겨 인프라가 일천한 대한민국의 동계스포츠 팬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한겨울밤의 꿈을 선사해준 선수니까.

 

 

 

정말로 김연아 선수가 2010년에 밴쿠버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기를 바란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은 계속 컴페티션계에 남아서 선수생활을 계속해야 한다.

 

경쟁자로 불렸던 사람이 이미 금메달을 따고, 아이스쇼에 진출해서 인생을 즐기는 동안,

 

계속 4년 뒤를 바라보며 훈련에만 매진해야 한다. 선수생활 말년에 초라하게 전락한 미셸 콴과,

 

눈물 반, 땀 반으로 스케이팅을 했던 이리나 슬루츠카야,

 

그리고 아라카와에게 지기 싫어서 30살이 다되서까지 아마계에 남아있는 수구리 후미에를 보라.

 

이들은 '은퇴할 수 없었던' 선수들이다. 꿈을 이루지 못해 그 흔적을 쫓는 선수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난 이런 선수들보다는 일찌감치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보다 폭넓은 선택권을 가졌던 옥사나 바이울이나 사라 휴즈가 더 행복한 선수생활을 했다고 생각한다.

 

브라이언 오서도 이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8년, 무려 8년간 올림픽 금메달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오서가 아닌가.

 

김연아 선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2010년에는 꼭 금메달을 안겨주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진심으로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을 기원하고 있을 테다.

 

김연아 선수가 '은퇴할 수 없는 선수' 가 아니라, '은퇴할 수 있는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경력? 수상? 그런 건 상관없다. 난 팬으로서 이 선수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감동은 충분했으니까.



무릎팍 도사에 문성근이 출현했다.
아마 다 찍고 이제 개봉할 영화 '실종'의 프로모션차 일꺼라는 생각을 한구석에 접고...
노트북으로 다른일을 하며, 대충 듣고 있었다. (그것이 알고싶다.를 진행했던 익숙한 목소리)

아.. 마따.
그는 뉴스란에 사회란에 틈틈히 이름이 보이던, 문익환 목사의 아들이었다.
머.. 그 냥반에 대해서는 그냥 그렇듯이.. 사회운동가. 정부에서 골치아파했던 인물.
투옥이 자주되었던 양반.. 이런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듣고 있는데..

윤동주에 대해서..
그들이 친구라는 것에 대해서.
같은해, 같은동네에 태어난 그들이.
순간의 선택에 따라서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나를 얘기하는데...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역사의 소소한 단편이 그 역사를 겪어내었던 사람의 아들이
직접 보고 얘기를 해주는 것이다.

학교다닐때, 난... 다른애들이 서태지에 빠져있을때..
촌스럽게도 윤동주를 좋아했었고,
다른애들이 가수들을 따라다닐때...
난 .. 대학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극단에서 연극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고3때..
내내 모범생이었던 내가 그 중요한 시간을 그렇게 반항아닌 반항을 했을때,
아빠에게 생전처음 맞아보고, 절대적이였던 귀가시간을 그것도 몇시간이나 어겼을때...
방에 갇히기도 했었다.
여튼.... 윤동주는 한때나마 내가 좋아했던 시인이였고,
대학생 언니오빠들의 나라에 대한 걱정과(그때 대학생은 지금이랑은 좀 달랐다..ㅋㅋ)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있는지에 대한 희미한 정보나마 접하기도 했었다.

그. 윤동주가 선택한 길은 군대에 입대해서 반란을 일으키는것.
문목사의 선택은 일제를 위해 싸울수 없으니 교장과 담판을 짓고, 전학
장준하는 군대에서 탈출해 김구를 만나 독립운동.

그 세친구중에..
윤동주의 마지막이 제일 안타까웠다.

일제마루타로 생체실험을 받다가 29에 죽은 윤동주는...
그 젊은 사진으로 늙지 않고... 계속 남아있다.

그 젊은 윤동주에게 초로의 문목사가 쓴 시가 브라운관에 나올때..
왠지 모르는 눈물이...키보드에 떨어졌다.

참..슬픈 역사이고, 참 슬픈 역사를 감내한 젊음들이다..
과연 지금 우리 젊은이들에게..그 슬픔을 이해하고 감내할 깡이 있더냐.

우연인지 ... 다음날..
문목사와 문성근이 검색어 10위권내에 계속 상주하는 내내...
모든 포탈에 링크된 검색뉴스에는 문성근이 언급한 역사에 대한 기사는 없었다.
그나마 링크된것 블로거들의 블로거 뉴스.

연예인들이 그 전날 누구랑 밥을 먹었는지조차
기사로 만들어내는 그 기자들은 도대체 어딜 간것인가...ㅋㅋ




   동주야   

                            문익환

너는 스물 아홉에 영원이 되고

나는 어느새 일흔 고개에 올라섰구나

너는 분명 나보다 여섯 달 먼저 났지만

나한테 아직도 새파란 젊은이다

너의 영원한 젊음 앞에서

이렇게 구질구질 늙어 가는게 억울하지 않느냐고

그냥 오기로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할 수야 있다만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 다는 게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너마저 늙어간다면 이 땅의 꽃잎들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

김상진 박래전만이 아니다

너의 ‘서시’ 를 뇌까리며

민족의 제단에 몸을 바치는 젊은이들은

후쿠오까 형무소

너를 통째로 집어삼킨 어둠

네 살 속에서 흐느끼며 빠져나간 꿈들

온 몸 짓뭉개지던 노래들

화장터의 연기로 사라져 버릴 줄 알았던 너의 피묻은 가락들

이제 하나 둘 젊은 시인들의 안테나에 잡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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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윤동주가 어릴때 휙 집어던져서 상처받아 시를 안썼다는 문목사의 시.